〈리움 현대미술 소장품전〉에서 만나는 예술의 대화
만약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마크 로스코의 화면 앞에, 한국의 서정적 화풍을 보여준 장욱진의 작품이 나란히 놓인다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리움미술관이 3년 만에 공개하는 〈리움 현대미술 소장품전〉은 이러한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이번 전시는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리움이 수집해 온 국내외 현대미술의 주요 컬렉션을 색다른 방식으로 선보인다. 시대 순이나 주제 중심의 전시 구성을 탈피해, 작품 간의 새로운 관계와 연결성에 주목한 구성이다.
리움이 처음 선보이는 작품 27점 포함, 총 44점의 현대미술 작품
이번 전시에는 총 35인의 작가가 참여, 44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이 중 27점은 최초로 공개되는 소장품이다.
솔 르윗(Sol LeWitt), 칼 안드레(Carl Andre), 리처드 디콘(Richard Deacon),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이번 기회를 통해 대중과 처음으로 만난다. 여기에 루이즈 네벨슨(Louise Nevelson), 한네 다보벤(Hanne Darboven),리 본테큐(Lee Bontecou), 정서영,임민욱 등의 최근 수집작도 더해져, 리움의 컬렉션 스펙트럼을 한층 확장시킨다.
로댕부터 자코메티까지, 한 전시장에서 이어지는 조형의 흐름
전시 공간 M2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칼레의 시민’. 14세기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의 항복 조건을 받아들인 시민들의 고뇌와 결연한 표정을 담은 이 작품은 과거 로댕갤러리에서 전시되었으나, 이번에 9년 만에 대중에게 다시 선보인다.
이후 전시장에서는 마크 로스코와 장욱진의 작품이 나란히 배치되며, 이어서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거대한 여인 Ⅲ’, 솔 르윗의 ‘매달린 구조’, 루이즈 네벨슨의 조각 등이 이어진다. 조형성과 추상의 경계를 탐색하는 이들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에서 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공간에서 **의외의 공명과 대조를 만들어낸다**.
한국 달력으로 만든 개념미술, 한네 다보벤의 ‘한국 달력’
1층에서는 독일 개념미술 작가 **한네 다보벤**의 설치작 ‘한국 달력’이 시선을 붙든다. 1991년, 작가가 우연히 입수한 한국 일력을 기반으로 만든 이 작업은 총 366장(윤년 포함)의 종이로 구성되며, 일부가 전시된다.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다보벤의 방식은 언어와 수치를 넘나드는 복합적 감각을 자극한다.
비선형 구성, 관람객의 상상력을 여는 전시 설계
이번 소장품전의 가장 큰 특징은 연대기적 배치나 주제별 구성이 아닌, 작품 간의 새로운 병치에 있다. 명확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관람객이 작품 간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아가며 감각적으로 읽어가는 방식을 제안한다. 일종의 열린 퍼즐처럼 전시장을 구성함으로써, 작품들은 서로 교차하며 관람자 안에서 다층적인 의미를 생성한다.
“관객 스스로 공간과 작품을 탐색하며, 그 안에서 의미와 경험을 확장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
전시장 구조의 재해석, 큐브별 몰입형 전시 공간
이번 전시에서는 M2관 내부 공간도 새롭게 변형되었다. 전시실을 **독립된 큐브 형태로 나눠, 각각의 공간에서 이우환, 김종영 등 작가들의 세계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로비와 휴게 공간까지 확장된 설치 작업도 눈에 띈다. 박미나와 Sasa[44]의 ‘하하하’, 프랑수아 모렐레(François Morellet)의 기하학적 설치 작품도 관람객을 맞이한다.
예상 밖의 조합이 일으키는 감각의 충돌
‘마크 로스코 × 장욱진’, ‘르윗 × 자코메티’, ‘달력 × 조각’. 전시가 제안하는 수많은 이질적 조합 속에서, 우리는 익숙한 작품에 대해 새롭게 감각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나열이 아닌, 현대미술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열린 대화다.
김성원 부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리움미술관의 현대미술 컬렉션이 동시대적 맥락에서 새롭게 읽히길 바란다”고 밝혔다.
44점의 작품이 만든 관계망 속에서, 관람객은 예술과 삶, 시간과 공간을 연결짓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전시 정보
전시명: 리움 현대미술 소장품전
기간: 2025년 2월 27일부터
장소: 리움미술관 M2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16)
주최: 리움미술관
협찬: KB금융그룹
리움만이 가능한 조합, 익숙한 작품의 낯선 맥락.
예술이 서로에게 말을 걸고, 관람객이 그 대화를 듣는 시간.
그 한가운데서 당신만의 의미를 찾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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