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로 쌓아 올린 호기심 캐비닛
서울의 대표적인 컨벤션 센터, 코엑스가 대대적인 리뉴얼에 들어간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 지명 설계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영국의 디자인 회사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가 맡았다. 이번 리뉴얼은 한국무역협회(KTIA)가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GITC)와 현대자동차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개발과 연계하여 기획한 것으로, 코엑스를 세계적인 마이스(MICE)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공모는 디자인의 창의성, 실현 가능성, 인근 지역과의 조화 등을 기준으로 평가됐으며, 헤더윅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서 진행한 대형 프로젝트에서 쌓은 경험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최종 당선됐다.
헤더윅 스튜디오가 제시한 핵심 디자인 개념은 ‘호기심 캐비닛(Cabinets of Curiosities)’이다. 이는 전시장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다채로운 경험이 가능한 장소로 바꾸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존의 유리 외벽 대신, 다양한 크기의 박스를 조립하듯 쌓아 전시와 대중 참여 프로그램, 콘퍼런스 등 여러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이 공간은 공식적인 행사가 없을 때에도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오가며 즐길 수 있도록 개방성과 시각적 매력을 동시에 추구한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코엑스를 누구나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 역동적이고 풍부한 문화적 경험이 가능한 장소로 재구성하겠다는 방향성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모듈형 설계 방식은 구조 변경이 유연하며, 공사 기간에도 전시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심사위원장을 맡은 제해성 교수는 이번 리뉴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속가능성’을 꼽았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공간의 제약과 건축 기준을 유연하게 수용하면서도 미래 친환경 건축의 기준을 선도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재료의 재사용, 에너지 효율 강화, 실내외 환경 개선, 이용자들의 건강과 편안함을 설계의 우선 과제로 삼았다. 과거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이러한 방향성이 일관되게 드러난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
헤더윅 스튜디오는 영국의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이 설립한 다학제 디자인 그룹으로, 건축부터 도시 계획, 조경, 제품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재료와 최신 기술을 접목해 독창적인 구조를 창출하며, 환경을 고려한 설계와 재료 재활용에도 큰 가치를 둔다. 또 건축이 단순히 구조물이 아닌, 사람이 직접 체험하며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디자인한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뉴욕의 ‘베슬(Vessel)’이 있다. 고대 인도의 계단식 우물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구조물은 2,500개의 계단과 154개의 연결 통로로 구성되며, 총 80개의 전망 플랫폼을 통해 맨해튼과 허드슨강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설계됐다. 사람들의 이동을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삼은 공공 예술적 건축물이다.
또 다른 사례는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Azabudai Hills)’다. 2023년 완공된 이 대규모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는 ‘도심 속 마을’이라는 콘셉트로 진행됐으며, 도시 구조와 자연 요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직선적이고 획일적인 디자인 대신 곡선을 활용한 부드러운 건축 형태가 특징이다. 또한, 제로에너지건축(ZEB)을 실현하며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를 적극 도입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했다. 이로 인해 아자부다이 힐스는 도쿄의 지속가능한 스마트 시티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한강의 노들섬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공간은 자연과 도시의 경계를 허물고, 건축물이 자연 속으로 확장되는 듯한 설계를 지향했다. 곡선형 보행로와 계단식 테라스를 통해 방문객이 다양한 높이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코엑스의 미래, 글로벌 허브로의 도약
2029년, 리뉴얼을 마친 코엑스는 한층 새로워진 모습으로 서울의 문화와 기술을 대표하는 복합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지금도 다양한 국제 전시, 박람회, 콘퍼런스, 세미나 등이 활발히 개최되고 있지만, 리뉴얼 이후에는 K-컬처는 물론 첨단 IT와 테크 산업의 중심지로서 더욱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글로벌 허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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