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바흐의 침묵을 연주하다 – 2025 카네기홀 골드베르크 변주곡 리사이틀
2025년 4월 25일, 뉴욕 카네기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다시 무대에 섰다. 지난 해 뉴욕타임스로부터 “2024년 최고의 공연”으로 선정된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번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으로 돌아왔다. 단순한 귀환이 아닌, 음악과 침묵, 해석과 존재가 교차하는 21세 청년의 고독한 순례였다.
아리아에서 아리아까지, 울림보다 깊은 침묵
무대 위 임윤찬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 한참 동안 양손을 무릎 위에 두고 침묵했다. 관객의 긴장과 기대가 극대화된 순간, ‘아리아’의 첫 음이 흘러나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저 곡의 구조와 흐름에 귀 기울이는 자세였다. 디테일보다는 전체의 흐름을 의식한 연주는 이후 변주에서도 일관됐다.
변주, 사라짐의 미학을 설계하다
임윤찬은 변주들을 선으로 잇기보단 면처럼 확장했다. 3~6번 변주는 색연필을 문질러 번지게 한 듯한 흐릿한 톤으로 해석됐고, 13번 변주는 체감 속도가 더욱 느려져 새벽의 안개처럼 퍼졌다. 15번 단조 변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의 결이 무대를 채웠고, 마지막 음은 거의 사라지듯 연주되었다. 그 울림은 곧 정적의 예술이 되었다.
25번 단조 변주: 기억 속 슬픔과의 재회
후반부의 절정을 이루는 25번 변주에서 임윤찬은 최소한의 터치로 익숙한 비애를 노래했다. 담담한 멜로디는 어디론가 흘러가듯 울렸고, 곡은 존재하지만 사라지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지는 26~29번은 점점 밀려드는 물결처럼 에너지를 쌓아올렸다.
30번 변주와 절대 침묵
30번째 변주 ‘콰들리벳’에서 임윤찬은 모든 긴장과 엄격함을 내려놓고 마지막을 유연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리아 다 카포로 돌아가면서 그 여정을 완성했다. 연주가 끝난 후 그는 손을 건반 위에 올린 채 정지했고, 관객은 완전한 침묵으로 응답했다. 이는 이날 무대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다.
앙코르, 단 하나의 음
일곱 번의 커튼콜 후, 그는 다시 피아노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리아의 베이스라인만을 조용히 눌렀다. 1분도 안 되는 이 앙코르는, 한 편의 회고처럼, 바흐의 본질을 관객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자 새로운 시작의 암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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