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프랑스의 축구 잡지 《프랑스 풋볼》이 유럽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자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발롱도르.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발롱도르는 전 세계 모든 축구 선수가 꿈꾸는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성장했습니다. 초창기의 발롱도르 역사와 그 성장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되짚어 봅니다.
시작과 변화의 순간들
1956년,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윙어 스탠리 매튜스가 단 16명의 기자단 투표로 초대 수상의 영예를 안았을 때만 해도 발롱도르는 ‘유럽 국적 선수’만을 대상으로 하는 상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시상식이 연말에 열렸던 이유는, 시즌제와 상관없이 잡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상업적인 목적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발롱도르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세계를 품다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철의 장막을 넘은 수상
1990년, 공산주의의 몰락은 동유럽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불가리아의 공격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그 변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조국을 떠나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그는 요한 크루이프의 ‘드림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1994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습니다. 그의 수상은 냉전 시대가 강요했던 체제의 벽을 넘어선 개인의 승리이자, 자유를 향한 축구계의 염원이었습니다.
조지 웨아: 아프리카 대륙 최초이자 유일한 영광
1995년, 발롱도르는 국적 제한을 철폐하며 스포츠의 세계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비유럽 국가에서 최초의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라이베리아 출신의 공격수 조지 웨아가 그 주인공이었죠. 그의 수상은 아프리카 대륙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발롱도르 수상 기록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시상대에서 “이 발롱도르는 전 세계를 위한 것”이라고 외친 그의 말처럼, 발롱도르는 비로소 유럽을 넘어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최종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FIFA 랭킹 상위 100개국 기자단의 투표로 주인이 가려지는 발롱도르. 작은 잡지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이 ‘황금공’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경계를 허물며 스스로의 권위를 증명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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